[인문학]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 - 아녜스 르디그
기적을 겪어본 적은 없다.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은 모두에게 찾아 오지 않는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적을 딱히 바라지 않았기에 겪지 못했다해서 섭섭하거나 하진 않다.
다만, 문제는 수 많은 사람들이 노력에 비례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했음에도 가정을 책임지기에는 크게 모자라는 생활비를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옳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도 정직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 펼쳐지는 것이 옳겠으나 아쉽게도 기적은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기적을 행하는 자는 신일까?
책에서는 상처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치유해주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슈퍼의 카운터에서 눈물을 훔치며 일하는 미혼모의 삶에 기적이 찾아 온다.
그 기적의 창조자는 신이 아닌 할아버지고, 시작은 눈물에 대한 연민 혹은 공감이었다.
공감이 조금 더 맞는 단어일 것이다. 할아버지도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 삶이란 끊임없는 사건과 만남의 리듬에 따라 부단히 움직이는 것이니까 "
삶의 주체는 인간이다. 끊임없는 사건과 만남의 리듬을 생성하는 것도 인간이고, 기적을 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움직임 속에는 다채로운 빛이 존재한다. 빛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역시 인간 스스로 정한다.
"인생 자체가 아름다운게 아니라, 우리가 그걸 아름답게 보거나 덜 아름답게 보는 거에요."
때로 어두워지고, 암담한 빛이 드리운다 해도 그 해석은 자유라는 것이다.
위의 말들이 조금의 위로는 될 수 있을 테지만, 막상 실천하기란 어렵다.
주인공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다. 죽음마저 무작정 아름답게 해석할 수는 없다.
대신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주인공과 같은 경험이 없음에도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주인공과 비슷할만한 감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 시간이 멈춘 느낌.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고 거대한 감정이 내 몸에서 차오른다.
보통은 슬픔과 분노였다. 아픔 속에서는 그저 내 아픔만이 중요했다.
커다란 소용돌이도 결국 고요해졌다. 소용돌이가 남기고 간 흔적이 공감을 만들고, 비슷한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돕고, 타인에게 기적을 행할 아름다움을 만든다.
슬픔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다.
" 절대 두 손 들지말라.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일 수 도 있다. "
그러다 보면 기적이 찾아올 수 있다.
기적을 바라고, 오늘도 성실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