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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다양한 종류의 불안에서 시작된다. 불안의 근본적인 시작에 의문을 갖던 차에 지하철 무인 대출기에서 평소 좋아하던 작가,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마주했다.


대한민국은 신분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꿈꾸고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평등 사회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결과는 결코 평등하지 못했다.

'기회'의 평등이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위의 구절을 현 시대에 반영하여 바꿔보겠다.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노력을 충분히 했는지에 대하여 가난한 자 스스로가 답을 해야 하는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취업 준비생의 노력의 양을, 노후 대비를 해두지 않은 노인들을 문제의 원인으로 정해서는 안된다. 왜 여전히 가난하냐면, 기회의 평등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불평등한 출발선을 인지하더라도 불안은 그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관심을 원한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하고, 자신의 정체성은 주변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성공은 관심을 받기에 필요한 요소로 인지되어지며, 성공을 위해 재능이 필요하다.

재능이라는 것이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도 달라지지 못하는 자신 역시 불안의 한 원인이다.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준거집단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되었다. 중학교 성적으로 나눠진 고등학교에서 비슷한 수준의 또래를 줄세우고, 순위를 매긴다. 수 많은 학생들을 평가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급을 나눠 대체로 평등한 집단에서의 차이는 학생들을 옭아 맨다.

인정과 관심은 능력이 있는 자에게 쏠리고, 그들은 영향력을 가진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러한 상태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 반응을 통해 수치감을 느끼게 된다. 


여러 시대를 거스르며 불안에 대해 서술한 작가는 해결책 또한 제시해 준다.
개인이 불안을 이길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다. 예술, 철학, 종교 등.



" 예술 작품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


" 예술매체는 사람이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모든 드러나지 않은 삶의 가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준다. "


" 농담은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고, 더 공정하고 더 멀쩡한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


" 광대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회적 위계 내에서 우리가 하찮다는 느낌은 모든 인간이 우주안에서 하찮다는 느낌 안에 포섭되면서 마음에 위로를 얻게 된다. "


"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




해결책을 읽은 후 다시 정리해 보았다. 나의 삶에 맞춰서!

내 삶의 여정은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찾아가는 과정에서 확신을 갖지 못하고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요구해왔다. 잘못되었다거나 의존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파악해 나가고 있고 그것들은 채 굳지 않아 부드럽다. 언제든 변하고, 움직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타인의 관심을 원한다. 

더 나은 가치를 함께 찾기 위해서. 이것이 영원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느 정도 두터워 졌을 때 비로소 나는 고독함을 선택할 것이고 이성에 따라 나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복을 가득 부풀려서 다른 사람의 삶에 전달하는 것이 내 궁극적인 목표다.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 각자 다른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만, 새로운 감정을 탄생시킬 수 있다. 기존의 내 감정보다 더 깊거나 훌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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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이나 음악이나 와인이 다른 것보다 분명하게 낫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속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편견의 정의는 어떻게 내리는 것이 좋을까?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견일까? 이것은 옳고 저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편견일까? 검색해 본 결과 편향된 견해이다. 차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과 충분한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을 나쁘게 보는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또래들 사이에서 속물은 재물적인 것으로만 평가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재물적으로만 평가한다면 그것은 속물이 아닌가?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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